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50대 귀농 실패담 - TV에서 안 보여주는 현실

by Hanoi Kwon 2025. 7. 25.

어제 저녁에 TV 켜니까 또 귀농 프로그램이 나오더군요. 아, 진짜 언제부터인지 이런 프로그램이 엄청 많아졌습니다. 서울에서 스트레스 받던 50대 부부가 시골 내려가서 농사짓고, 직접 기른 채소로 밥해먹고, 동네 사람들이랑 정 나누며 행복하게 산다는...

뭔가 다 똑같습니다. 처음엔 힘들어하다가 결국 "역시 귀농이 답이다", "진짜 행복을 찾았다" 이런 식으로 끝나잖습니까. 보면서 아내가 "우리도 한번 해볼까?" 하는데, 아 진짜 속으로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왜냐하면 제 주위에서만 해도 귀농했다가 다시 올라온 사람이 세 명이나 있거든요. 근데 이런 얘기는 TV에서 절대 안 나와요. 맨날 성공담만. 실패한 사람들은 뭐 창피해서 얘기 안 하는 건지, 아니면 방송국에서 재미없어서 안 다루는 건지.

그래서 오늘은 제가 본 귀농 경험담들에 대해 써보려고 합니다. 별로 유쾌한 얘기는 아니지만요.

 

귀농해서 진행한 토마토 농사

50대 중반 회사원에서 농부로

박선배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대학 선배인데, 졸업하고 나서 한 회사에서 쭉 다녔습니다. 그런데 재작년 초에 갑자기 "나 농사 지으려고 한다"고 하더군요. 처음엔 농담인 줄 알았어요.

"선배, 진짜요?" 물어봤더니 "TV 보니까 귀농한 사람들 다 행복해하잖아. 나도 한번 해볼까 해서." 하더라고요. 나이가 54세, 애들 교육비 부담에 회사에서는 은근히 눈치 주는 그런 시기였죠.

경기도 어디론가 내려가서 토마토 하우스 농장을 시작했습니다. 대출도 좀 받아서요. 처음엔 정말 의욕적이었어요. "공기 좋고, 스트레스 없고, 건강한 먹거리도 기를 수 있고..." 맨날 이런 얘기만 했습니다.

그런데 몇 개월 지나니까 연락할 때마다 목소리가 달라지더라고요. 부인은 "이거 언제까지 할 거야? 애들 교육비는 어떻게 하고..."라며 서울로 돌아가자고 압박하고, 동네에서는 농약 쓰는 방식이나 물 사용 문제로 이웃들과 자꾸 마찰이 생기고. "야, 이거 생각보다 진짜 복잡하다. 농사만 지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결국 2년 만에 다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돈도 좀 날렸고요. 지금은 다른 일 하고 있는데, 그래도 "경험은 됐다"면서 웃어넘기더라고요. "TV에서 하는 것처럼 쉽지는 않더라"는 게 선배 결론이었습니다.

이게 박선배 귀농 도전기의 전부입니다.

왜 실패했을까 생각해보니

사실 박선배 얘기 하면서 계속 생각했는데, 결국 준비가 부족했던 게 제일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박선배가 귀농 결심했을 때 뭘 했냐면, 농업기술센터에서 6개월 교육 받고 "이제 됐다!" 했거든요. 6개월이요. 회사 업무 하나 제대로 익히는 데도 1년은 걸리는데 말이죠. 그것도 주말에만 나가서 듣는 이론 수업이 대부분이었고요.

돈 계산도 엉성했습니다. 하우스 짓고, 시설 들여놓고, 씨앗 사는 돈만 계산했지, 그 다음에 계속 들어갈 돈은 생각 안 했더라고요. 농약값, 전기료, 유류비... 이런 거 매달 나가는 게 만만치 않은데 말이죠. "일단 시작하면 되겠지" 이런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가족들하고 제대로 얘기 안 하고 혼자 결정했어요. 부인은 나중에야 "진짜 하는 거야?"라고 알았다고 하더라고요. 애들 교육비, 생활비 이런 현실적인 문제들을 가족들이 다 떠안게 된 거죠.

동네 사정도 전혀 몰랐고요. 그 지역이 어떤 곳인지, 이웃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물 사용이나 농약 사용에 대한 암묵적인 룰들이 있는지... 이런 걸 미리 알아볼 생각을 안 했습니다. 가서 부딪혀가며 배우면 되겠지 했던 거죠.

결국 TV에서 보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한 게 문제였어요. 충분한 준비 없이 덜컥 시작했으니까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럼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

박선배 실패담을 쭉 얘기했는데, 그럼 대체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요?

일단 기술부터 제대로 배워야겠죠. 6개월 주말 교육으로는 안 됩니다. 정말로 귀농할 생각이면 최소 1-2년은 실제 농장에서 일해봐야 해요. 아르바이트든 뭐든 해서 말이죠. 이론이랑 실제는 완전히 다르거든요. 박선배도 "토마토 기르는 게 이렇게 복잡할 줄 몰랐다"고 하더라고요.

돈 계산도 꼼꼼히 해야 합니다. 초기 투자금만 생각하지 말고, 3년 정도는 수익 없이 버틸 수 있을 만큼 여유 자금을 준비해야 해요. 농사는 첫해부터 대박 나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까요. 박선배처럼 "일단 시작하면 되겠지" 하면 안 됩니다.

가족들 설득도 중요하고요. 혼자만의 꿈이면 안 되죠. 부인도, 애들도 다 동의해야 합니다. 특히 교육 문제, 의료 문제 이런 건 미리 충분히 논의해둬야 해요.

그리고 지역 조사를 제대로 해야 합니다. 최소 1년은 그 동네를 자주 드나들면서 분위기도 파악하고, 농사 잘하는 분들한테 조언도 구하고, 판매처도 미리 알아보고. 박선배는 이런 거 하나도 안 하고 갔으니까 실패한 거죠.

사실 이렇게 하면 귀농 성공 확률이 훨씬 높아집니다. 준비 없이 덜컥 시작하는 게 문제지, 귀농 자체가 나쁜 건 아니거든요.

그래서 결론은

귀농이 나쁜 건 아닙니다. 실제로 잘 되는 분들도 있고, 박선배처럼 실패한 사람들도 있고 그런 거죠.

다만 TV 프로그램만 보고 판단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방송에서는 맨날 성공담만 나오잖아요. 힘든 과정은 다 편집하고, 결과만 보여주니까 "아, 나도 할 수 있겠다" 착각하게 되는 거 같습니다. 박선배도 그랬고요.

50대에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는 게 원래 쉬운 일이 아니에요. 젊을 때도 어려운데 하물며 나이 들어서는 더 신중해야죠. 특히 가족이 있으면 더더욱이요.

그렇다고 무조건 하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하고 싶으면 하세요. 다만 충분히 준비하고, 최악의 경우도 생각해보고, 가족들과도 충분히 상의해서 결정하라는 거죠.

박선배는 지금도 "그래도 경험은 됐다"고 말하긴 하지만, 솔직히 좀 아깝긴 해요. 조금만 더 신중하게 준비했으면 결과가 달랐을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아무튼 TV만 보고 성급하게 결정하지는 마세요. 현실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니까요.


이 글은 대학 선배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하였습니다. 일부 내용은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각색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