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돌아갈래.”
이 대사,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시나요?
아마 누군가에겐 그냥 영화 속 대사일 수도 있지만, 저에겐 이 말이 가슴 깊이 울리는 절규처럼 들렸습니다.
살다 보면 누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되잖아요. “그때로만 다시 갈 수 있다면…”
저도 그랬던 순간들이 몇 번 있었거든요. 누구나 그런 순간은 있을 겁니다.
영화 제목이 ‘박하사탕’인 이유?
사실 처음엔 제목이 너무 가볍게 느껴졌어요.
박하사탕이라니, 무슨 어린 시절 이야기라도 나오나 싶었죠.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이 제목만큼 잘 어울리는 말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박하사탕은 단순한 사탕이 아니라, 김영호가 잃어버린 순수함과 첫사랑의 상징이었죠.
시원하고 달콤하지만 오래 머금고 있으면 씁쓸한 맛이 남는, 딱 그런 기억들 말이에요.
저도 그런 기억이 하나 있어요.
대학 시절, 친구와 여름밤을 걷다 편의점에서 산 박하사탕을 나눠 먹었는데,
그때 나누던 웃음소리, 별거 아닌 대화, 그 모든 게 아직도 선명하거든요.
지금은 아무리 비슷한 사탕을 입에 물어도,
그때 그 맛은 나지 않더라고요.
“나, 다시 돌아갈래” –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영화는 1999년. 기찻길 위에서 한 남자가 외칩니다.
“나, 다시 돌아갈래!”
그 말을 기점으로 이야기는 거꾸로 흘러가요.
- 1994년, 냉소적인 사업가
- 1987년, 고문을 일삼던 경찰
- 1984년, 사랑했던 아내와의 짧은 신혼
- 1980년, 광주에 투입된 군인
- 1979년, 해맑은 대학생 김영호
우리는 그가 어떻게 변했는가가 아니라, 어떻게 무너졌는가를 보게 됩니다.
겹겹이 쌓였던 껍질이 벗겨지고, 가장 안쪽의 순수한 자아가 드러날수록 마음은 더 무거워지죠.
내 자신에겐 영화를 보면서 저도 저만의 시간표를 따라 거슬러 올라가 봤어요.
거울을 보며 ‘언제 이렇게 피곤한 얼굴이 됐지?’ 싶은 날들,
첫 출근 날 아침에 느꼈던 그 두근거림,
고3 겨울에 교문 앞에서 손 호호 불며 친구랑 이야기 나누던 그날까지요.
지금의 나도, 언젠가 누군가가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말로 그리워할 순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시절, 우리의 1980년대는 어땠을까?
1980년대. 군사정권, 민주화운동, 광주…
교과서에 나오고 뉴스에선 떠들썩했지만,
저처럼 고등학생이었던 사람들에겐 그 시절이 어쩌면 어렴풋한 공기처럼 느껴졌을 수도 있어요.
선생님들도 쉽게 입을 떼지 못했고,
집에서도 “그런 얘기는 밖에서 하지 마라”는 말을 자주 들었죠.
그래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답답했던 기억은 남아 있어요.
고등학생 시절인 나에게도 1987년 여름, 교실 창문 너머로 최루탄 냄새가 희미하게 날아들던 날이 있었어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정확히 알지 못했지만,
거리 너머 어딘가에서 세상이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은 또렷했어요.
그 뿌연 공기 속에서, 어른들도 아이들도 조용히 눈치만 보던… 그런 시간이었죠.
영화 속 김영호는 바로 그 시절의 중심에 있었어요.
그는 시대의 희생자였고,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가해자였습니다.
점점 무너져가는 그의 모습은 당시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닮아 있었죠.
“나 다시 돌아갈래”의 진짜 의미
많은 사람들이 이 대사를 단순히 “좋았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로 이해하죠.
그런데 영화 끝까지 보고 나면,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돼요.
김영호가 돌아가고 싶었던 시간은 모든 게 시작되기 전,
사랑이 있었고, 죄책감도 없었던 그 순간이었어요.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죠.
그 시점조차 이미 파국을 향해 가는 길목이었다는 걸요.
“나 다시 돌아갈래”는 단순한 후회가 아니라,
이미 돌이킬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그 이전의 ‘나’를 부르짖는 절망이에요.
에필로그 –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생각이 많아집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그때는 언제였을까?”
저는 딱 떠오르는 장면이 있어요.
겨울 방학을 앞두고, 교실 창문에 입김을 불던 날.
친구와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로 낄낄대던 그 짧은 순간.
돌아보면 아무 일도 없었지만, 아무 일도 없어서 더 그립습니다.가끔은 그런 생각도 들어요.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지금보다 나았을까?”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까요,
중요한 건 돌아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아가느냐라는 걸 느꼈어요.
당신에게도 ‘박하사탕’ 같은 기억이 있나요?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나 다시 돌아갈래…”
속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날이 있진 않으세요?
하지만 어쩌면,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삶을
지금부터 다시 써 내려갈 수 있지 않을까요?
우리의 지금이,
언젠가 누군가에게 “다시 돌아가고 싶은 순간”이 되길 바라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