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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마다 나오던 그 기사들 - 대통령과 회장님 독서 목록

by Hanoi Kwon 2025. 7. 7.

기억하시나요? 여름만 되면 꼭 나왔던 기사들

여름 휴가철만 되면 어김없이 등장하는 기사가 있었습니다. "대통령께서 이번 휴가에 읽을 책은?" 같은 제목으로 말입니다. 아마 많은 분들이 그때마다 이런 궁금증을 가졌을 것입니다. 과연 그 바쁜 일정 속에서 저 많은 책을 정말 다 읽을 수 있을까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거의 20년 동안 이런 기사는 여름철 단골 메뉴였습니다. 김영삼 대통령부터 문재인 대통령까지, 매년 여름이면 어김없이 등장했습니다.

김영삼 대통령은 1996년 여름 '21세기 예측', '미래의 결단' 등의 책을 읽는다고 발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철학서에서 문학서까지 폭넓은 독서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과학서와 경영서를 가리지 않고 읽었다고 밝혔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런 현상이 대통령에게만 국한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삼성, 현대, SK, LG 등 주요 대기업 총수들도 여름마다 자신만의 독서 목록을 공개했습니다. 그리고 출판사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 대통령 추천 도서"라는 띠지를 붙여 마케팅에 활용했습니다.

 


독서 목록 공개, 그 이면의 진실

이런 독서 목록 공개가 담고 있는 의미를 생각해 보면 여러 층위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리더십 이미지 구축입니다. "나는 끊임없이 공부하는 성실한 리더다"라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방법이었습니다.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일수록 "책 읽는 대통령"의 모습은 국민들에게 안정감을 주었습니다.

언론사들에게도 이는 좋은 콘텐츠였습니다. 상대적으로 한가한 여름철에 쉽게 다룰 수 있는 기사 소재였고, 독자들의 관심도 높았습니다. 출판업계는 더 말할 것도 없습니다. "대통령 추천 도서"라는 권위 있는 타이틀 하나만으로도 베스트셀러 탄생이 가능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선은 복잡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대통령이 읽는다니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정말 다 읽었을까?"라는 의구심도 들었습니다.

리더 추천으로 베스트셀러가 된 책들

실제로 대통령이나 기업 총수들이 추천한 책들 중 상당수가 베스트셀러로 이어졌다는 점은 주목할 만합니다.

  • 김대중 대통령의 『역사란 무엇인가』는 그 이후 역사학 입문서로 널리 읽히며 스테디셀러가 되었습니다.
  •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한 『총, 균, 쇠』 역시 인문학 베스트셀러로 자리잡았습니다.
  • 문재인 대통령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당시 서점가에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한때 품절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찾았습니다.
  • 이재용 부회장이 언급한 『스티브 잡스』나 구광모 회장이 관심을 보인 『21세기 자본』 같은 책들도 경영진들 사이에서 화제가 되며 판매량이 크게 늘었습니다.

다행히 이런 책들은 대부분 실제로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도서들이었습니다. 추천한 사람이 실제로 읽었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책 자체의 질은 검증된 셈입니다.

시대가 바뀌면서 사라진 풍경

요즘은 이런 기사를 거의 볼 수 없습니다. SNS 시대가 되면서 굳이 공식적으로 "독서 목록"을 발표할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 책 사진 하나 올리면 그만입니다.

또한 대중들의 관심도 예전만큼 높지 않습니다. "어차피 이미지 메이킹용 아닌가?"라는 시각이 퍼진 것도 영향을 미쳤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쉬운 면도 있습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는 "독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았습니다. 대통령이 읽는다고 하니 나도 읽어봐야겠다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입니다.

그때 그 문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되돌아보면, 이런 독서 목록 공개 문화가 완전히 허상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이미지 메이킹 목적이 컸지만, 사람들이 책에 관심을 갖게 하는 긍정적 효과도 분명 있었습니다.

저 역시 그때 노무현 대통령이 추천한 『총, 균, 쇠』를 처음 접했습니다. 비록 끝까지 완독 하지는 못했지만, 적어도 시작은 했습니다.

지금은 유튜브나 인스타그램에서 책 추천을 많이 하지만, 그때만큼의 사회적 파급력은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의 추천과 인플루언서의 추천은 무게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끔 생각합니다. 그때 그런 기사들이 나름 의미가 있었다고. 적어도 독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은 지금보다 높았던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때 그런 기사를 보고 책을 구입해 읽어본 경험이 있으신가요?